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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정다희

애니메이션 감독,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2012년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애니메이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표작 〈의자 위의 남자〉는 2014 칸 영화제의 감독 주간 부문에 초청되었고,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한국 최초로 단편 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전 세계 약 100개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최근 발표한 애니메이션 〈빈방〉 역시 또 다른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히로시마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한국 최초로 대상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인지된 세계, 움직이는 것과 고정된 것, 대비와 대칭을 다루는 이야기들을 영상의 시간과 공간 안에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

단편 애니메이션의 지속적 제작을 위한 방안

들어가면서

2012년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 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나는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한국에서든 프랑스에서든. 그래서 졸업작품이 나의 마지막 작업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졸업 후, 첫 번째 작품인 〈의자 위의 남자〉를 만들 때에도,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데,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가능할까?’ 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CJ문화재단에 제작지원을 신청했고,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려면, 작품이 잘 나와야 할 텐데.’ 라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만나는 일반 대중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그런데, 뭐 먹고 살아요?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어요?”이다. 우선 대답은 “네, 이걸로 지금은 먹고살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보장할 수가 없어요.”

전 세계에서 (특히 한국과 프랑스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은 어떤 방법과 자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국가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우리에겐 어떤 과제들이 있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TV에서 보는 어린이용 시리즈 애니메이션, 극장에서 보는 상업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인식된다. ‘단편 애니메이션’은 0분~30분 내의 길이로 평균적으로 약 10분 정도의 길이가 가장 많다. 단편이기 때문에, 2D, 3D, 스톱모션, 컷 아웃, 퍼핏, 페인팅 온 글라스, 픽실레이션 등 어떤 기법으로든 만들어질 수 있으며,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내러티브가 가능한 애니메이션이다. 장편을 만들기 위한 파일럿 애니메이션이 될 수도 있고, 작가주의 감독의 예술 애니메이션이 될 수도 있다. 단편의 일반적인 상영 공간은 영화제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며,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Short lm’으로 분류된다. 국가마다 명칭이 조금씩 다른데, 유럽은 대체로 길이로 구분하여 장편과 단편으로 나뉜다. 미국과 한국 등은 독립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통상이다. 미국은 할리우드라 는 거대 영화 시장에 대비되는, 말 그대로 독립적으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은 정책적으로는 유럽의 제작지원 제도를 갖추고 있고, 용어는 미국과 같이 사용한다.

1. 예술의 가치와 인식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고용해주었을 때 일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다. 한편 예술가 (작가, 감독 등)라는 직업은 누군가 그를 고용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이다. 문제는 종종 한국에서 예술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거나,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직업 혹은 빌어먹고 사는 식충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살아 본 경험상 예술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매우 크다. 프랑스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만드는 단편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면, “와! 너는 예술가구나!”라며 반가워하곤 했다. 1968년에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들쥐들이 겨울을 준비하며 열심히 일하고 식량을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이라는 들쥐는 항상 구석에서 졸고 있다. 들쥐들은 프레드릭이 조금 못마땅하다. 마침내 겨울이 오고, 모아 둔 식량이 다 떨어지자 들쥐들은 모두 침울해진다. 그 때 프레드릭은 그동안 자신이 모은 햇살과 색깔을 친구들의 마음속에 보내준다. 자신이 쓴 아름다운 이야기와 시를 들려준다. 프레드릭은 예술가 들쥐이다.

단편 애니메이션과 같이 시장이 없고, 상업성이 떨어지는 분야의 예술과 문화를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하고, 감독과 작가들을 먹여 살리는 것 중 하나가 ‘국가의 제작지원 정책’이다. 여러 국가들이 많게든 적게든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정책을 갖추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상업성이 떨어지고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왜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갈수록 ‘상업적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의해 존재 가치가 결정된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도 연봉이 높거나 갖고 있는 재산이 많을 때 존재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대학에서는 졸업 후 취직이 어려운 전공은 다른 과와 통합해 버리거나 없애 버리기도 한다. 어떤 문화에 대한 발전을 논할 때에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들을 우선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갈수록 우리의 삶을 비인간적이고 고달프게 만든다. 나는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생존에 매몰된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다양한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영화이다. 우리는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친구들, 연인, 가족들과 영화를 본다. 때론 고되고 때론 지루한 현실에서 두 시간 동안 벗어나,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얼마나 까맣게 현실을 잊게 해주는가!’가 그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편 어떤 영화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잘 알지 못하는 땅, 과거의 전쟁,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기도 한다. 어떤 영화에는 이야기가 없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영화들을 통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도 있다. 또,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상상할 수도 있다. 나는 다양한 영화를 봄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금지서를 지정해 책을 읽지 못하게 만들던 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비슷비슷해져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상업 영화들이 극장을 가득 메우는 지금 현실이 과연 그때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때는 독재 정치가 사람들을 통제하기를 원했다면, 지금은 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똑같은 구조 안에서 인물의 직업과 배경만 바꿔서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하나의 삶만이 정답으로 여겨지게 된다. 다양한 삶과 이야기들을 이해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가 받아온 교육에서도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답을 알려주는 교육이었다. 예술 영화나 단편 애니메이션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문화와 문학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영화들을 습관적으로 보는 사람일수록 나름의 영화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좋은지 아닌지 자기 의견을 말하며, 더 차원이 높은 것을 원한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대중들이 그러한 것들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여러 장르의 예술들, 건축, 회화, 디자인, 영화, 철학, 과학, 기술 등은 시대에 따라 서로 영향을 받으며 함께 변화하고 진화해 왔다. 그 변화를 주도하고 이끄는 것은 반드시 실험적이며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은 위험을 수반한다. 그 모험을 감수할 때에만 더 좋은 것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많은 제작사들이 대중적인 것, 성공이 보장된 것, 이미 증명된 것에 투자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만 투자하고 지원하려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누군가가 만든 문화의 꽁무니를 쫓아가며, 남을 모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또한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투자에 대한 결과를 빨리 얻어내지 못하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바라본 문화, 실험적이고 새로운 것을 동반한 예술이 상업성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프랑스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그러한 문화를 활용한 시장 형성이다. 프랑스에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하나인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있다. 둘 다 작품성 있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영화제이다. 동시에 이 두 영화제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필름 마켓이 열린다. 전 세계의 제작사, 배급사들이 영화를 사고팔기 위해 모인다. 칸 영화제는 자신들 이 발굴하고 주목한 감독들을 키워주기도 한다. 재능 있는 외국 감독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자기네 문화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럽 가운데에서 영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작지원이 프랑스가 가장 많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이 프랑스와 공동제작을 한다. 그만큼 프로덕션과 프로듀서들도 많다. 프로듀서들은 지원을 받아 제작비를 마련하고, 제작을 관리한다. 홍보와 마케팅을 하며, TV 채널을 통한 배급 등 제작의 시작에서 끝까지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도록 통합적인 설계를 한다.

2. 국가의 제작지원

대부분의 국가들이 많든 적든 단편 애니메이션을 지원하는 정책을 갖추고 있다. 중국이나 태국같이 제작지원이 아예 없는 나라들도 더러 있으며, 있더라도 금액이 많지 않거나 지원 편수가 적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감독의 자비나 소셜 펀딩으로 단편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

한국의 제작지원

한국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연 1회 공모하여, 매해 총 17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지원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12편의 작품에 프로젝트당 4천만 원 내외의 지원비를 준다. 법인 또는 개인사업자를 가지고 있어야 신청이 가능하며, 연초에 공고하여 1, 2차 심사를 거쳐, 계약을 체결한다. 지원금은 분할 지급되며, 약 12개월 후 완성물에 대한 심사를 통과하면, 전체 지원금을 수급할 수 있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5편의 작품에 프로젝트당 2천5백만 원~3천5백만 원으로 차등지원을 한다. 사업자가 없어도 신청이 가능하며, 연초에 공고하여, 심사를 통해 계약이 체결된다. 약 15개월의 제작 기간 후, 완성물 심사를 하고 애니메이션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

두 기관에서 같은 작품으로 중복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제작지원을 받은 경우, 3년이 경과한 다음 연도 1월부터 동일 부문 신청이 가능하다. 이것은 같은 사람이 계속 지원을 받기보다 여러 감독 들이 고루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제도이다. 한정된 지원비를 여럿에게 나눠주기 위한 제도이긴 하지만, 이면에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완전한 장르로 바라보지 않고, 일시적이거나 장편을 하기 위한 전 단계 정도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다고 여겨진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없지만, 유럽과 캐나다에는 평생 단편 애니메이션만 만드는 작가들이 있다.

스위스 감독인 조르주 슈비츠게벨은 45년 동안 23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프랑스 감독인 플로렌스 미알레는 15년 동안 약 10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 두 감독의 작품의 특징은 이미지의 변형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 밖에도 영화진흥위원회의 해외 진출 지원이 있다. 해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작품이 상영되는 경우, 비행기 값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사기업의 제작지원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갖지 못하고 단기적으로 투자하고 사라져 버린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정책적으로 방송사들이 애니메이션에 투자하게 되어 있다. ‘유럽의 파라다이스’라고 하는 프랑스에는 어떤 제작지원들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프랑스의 제작지원

프랑스의 제작지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CNC 프랑스국립영화센터는 대부분의 영화, 애니메이션의 제작 지원의 핵심이다. 금액이 상당하여,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 한 편당 약 15만 유로를 투자해준다. 프랑스에서는 CNC의 제작지원을 통해서 한 해 약 40편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다. 분야도 세분화 되어, 단편 제작지원을 받은 동시에 영화 음악 제작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투자 지원은 TV 채널의 구매이다. 아르떼 Arte , 카날 플뤼 Canal+ 등의 채널들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선구매를 통해 투자지원을 해주거나, 완성된 작품을 구매한다. 구매 비용은 애니메이션의 길이에 따라 다르다. 10분 정도의 단편 애니메이션의 선구매는 2만 유로 정도이며, 완성된 작품을 구매할 경우에 분당 가격이 한국의 10배 정도 된다. 이러한 것들은 방송사의 간접, 직접 지원이라는 제도를 통해 유지되고 있으며, 미디어가 문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국가의 제도로 보호되고 있다.

세 번째로 지역의 지원제도가 있다. 프랑스의 제작지원 가운데, 실제로 예술이 사람들의 삶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지역의 지원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팔도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프랑스는 12개의 지역과 해외 영토 4개까지 합쳐서 총 16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지역마다 개별적인 문화 지원 정책과 예산을 가지고 있는데, 자체의 예산과 지역에 대한 CNC의 지원이 합산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와 공동제작을 하면서, 동쪽 지역인 스트라스부르 Eurometropole de Strasbourg 의 지원과 서쪽에 위치한 퐁트브로 수도원 Abbaye de Fontevraud 의 레지던시 지원을 받아본 적이 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해주면서, 감독들을 그 지역으로 초청한다. 일정 기간 동안 체류하며 새 작품을 만들고 동시에 지역의 관객들을 만나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들을 소개한다.

2013년 퐁트브로 수도원 레지던시에 초청받았을 때에는 〈의자 위의 남자〉를 작업하고 있었다. 이곳은 애니메이션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지원해주는 레지던시이다. 한때 수도원이었던 성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주변에는 해바라기밭과 숲이 있고, 자동차를 타고 30분을 나가야 장을 볼 수 있다. 서류 공고를 통해 작품 기획서를 심사하여, 매년 전 세계에서 약 10명의 감독들을 초청한다. 비행기 티켓을 포함한 교통비, 장학금, 식사비를 지원해주며, 집과 작업실을 따로 제공해준다. 레지던시 기간은 1달이며, 체류 초반에 이틀간 콘퍼런스가 열린다. 이 때 각국의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초대된다. 거장들의 마스터 클래스, 토론회가 열리며, 학생들도 많이 참가한다. 체류하는 감독들이 작품을 소개할 수 있게 전시와 미팅 테이블을 가진다.

감독들이 체류하는 기간 동안 근처 도시에서는 영화제와 상영회가 열린다. 감독들의 작품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방문한 한 영화제에서는 장편 영화 시작 전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한 편씩 보여줬다. 작은 시골로 할머니, 할아버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 다른 감독은 근처 도시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진행했다. 중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상영회를 열어, 학생들과 대화를 한 적도 있다.

퐁트브로 수도원 레지던시는 감독들에게도 좋은 기관이지만, 근처의 여러 작은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너무나 좋은 기관이다. 아이, 학생, 성인,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는 상영회와 프로그램이 기획 되어 있다. 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데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친숙하다. 예술은 그들의 삶 전체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또,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외국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공유하며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지역 지원 정책은 예술이 수도권 근처에만 집중되는 것을 막고, 지역으로 분산시켜 문화를 고르게 발전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매우 유익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스트라스부르 지역에서는 〈빈방〉의 제작지원을 해 주었는데, 지원금을 통해 그곳에서 약 두 달간 체류하며 작업했다. 〈빈방〉의 사운드 마스터링 작업을 그곳에 위치한 사운드 업체에서 직접 했고, 스튜디오의 방 하나를 빌려 두 달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레지던시를 갖추고 있는 퐁트브로 수도원 Abbaye de Fontevraud 이나 프랑스 중앙에 위치한 씨클릭 Ciclic 은 체류하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마련해주며, 그 밖의 지역에서는 지원비를 통해 프로덕션에서 직접 숙소와 작업실을 구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과 프랑스의 비교

한국은 중복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작 지원비가 한정되어 있다. 반면 프랑스는 모든 제작지원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통상적으로 CNC, TV 채널 한 개, 지역 한 군데의 지원을 받고 그 밖에 추가로 포스트 프로덕션 지원을 더 받기도 한다. 프랑스는 이렇게 많은 제작비로 프로듀서 위주의 체계가 만들어진다. 작품 전체의 관리를 프로듀서가 하고, 감독은 월급을 받는다. 작품에 대한 저작권도 프로덕션과 감독이 나누어 갖는다. 한국의 장편 영화 체계와 비슷하다. 제작비가 많기 때문에 규모가 큰 단편 애니메이션에 도전할 수 있다. 감독이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없고, 각 파트의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은 단편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프로듀서의 역할을 한다. 직접 개인사업자를 가지고, 지원을 신청하고 제작을 관리하며, 제작 후 배급까지 한다. 규모가 큰 작업을 하기에는 기간과 제작비가 한정되어 있다. 감독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감독이 모든 것을 관리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저작권 전체를 가질 수 있고, 독립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작품의 방향에 대해서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든 지원비가 많은 경우에는 프로듀서가 존재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감독들이 좀 더 독립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작품의 내용과 규모에 따라, 이런 두 가지 성격의 지원이 다 갖추어진 환경이라면, 매우 이상적일 것이다.

추가로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프랑스의 예술인 복지 정책에 대해 한 가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프랑스는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을 저작권 협회에 등록하여, 저작권료를 통한 장기적인 수익을 받을 수 있다. 또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부터 10달 동안 새 작품을 만들고 있지 않다면, 매달 월급처럼 창작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결론

단편 애니메이션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국가의 탄탄한 제작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감독들은 이 외에도 자립적인 노력을 한다. 다양한 분야와의 접목을 시도하며,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대부분의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작품만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든 상황이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장편 애니메이션을 하게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직업을 동시에 갖기도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광고를 만들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다. 또, 작품을 다른 분야와 접목한다. OSMU(one source multi use)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림책, 만화책으로 제작하거나, 라이선싱 사업을 시도한다. 갤러리나 전시장의 상영 공간을 택하여 작업을 계속하기도 한다. 물론 소셜 펀딩의 다양한 사례들도 있다. 감독들과 작가들은 이렇게 여러 방식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프랑스의 사례들과 정책들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환경에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가운데 이전에는 없었던 것들이 있다. 그와 같이 지금 우리가 일구어내어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면 한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든 선배들, 동료들, 후배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격려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