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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즘

송락현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산업적 발전을 위해 콘텐츠 창작과 비평 활동을 꾸준히 병행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송락현의 애니스쿨』, 『일본 극장 아니메 50년사』, 『애니메이션 시크리트 파일』 등이 있으며 2012년에 프로듀서를 담당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는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2위에 오른바 있다. 현재는 한국 오덕후 문화의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피규어 뮤지엄 W’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중에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세계 진출, 기회 혹은 위기?!

한국의 대중가요와 드라마가 한류라는 트렌드를 만들며 세계 진출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문화적 할인의 제한이 없어 해외 시장 진입에 유리한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는 이러한 성과들이 아직은 미비한 상태이다.

과거에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제작 수준이 세계 수준과 편차가 커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작력이 크게 상승한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기술적 부분 이외에서 해외 시장 진출에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은 없는지 되짚어 보게 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의 경우, 국내 개봉 수익만으로는 현실적으로 BEP에 도달하기 어려운 관계로 해외 수출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해외 시장만을 목적으로 작품을 기획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과연 한국 애니메이션의 세계 진출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며 제2의 도약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무모한 투자로 또 다른 악재를 불러올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글로벌 도전기

실사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외 진출에서 선결되어야 할 것은 능력 있는 메이저 배급 라인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국제적 위상이 아직은 높지 않기 때문에 해외 메이저 배급사를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로 인해 해외 진출 초기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해당 국가의 제작사와 작품을 공동 제작하여 배급 파트너를 찾아가는 형태였다.

대표적인 작품이 2006년에 개봉된 〈파이 스토리〉로 볼 수 있다. 본래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B급 시장만을 전문적으로 공략해 영화를 제작해 온 프로듀서 애쉬 R. 샤 (Ash R. Shah) 가 한국의 디지아트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B급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북미 기준에서의 B급 시장 규모는 우리나라 시장의 몇 배에 달하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디즈니나 드림웍스 계열의 메이저 타이틀과의 대결을 피해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실속을 취할 수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을 파악해 기획된 〈파이 스토리〉는 최초의 한미합작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되었고 속편 〈파이 스토리: 악당상어 소탕작전〉(2013)까지 이어지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해외 진출을 위한 나름의 방법론을 남겨 놓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작품들은 합작을 통한 전략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목표 시장인 북미에서의 극장 개봉은 성사되지 못했고, 박스오피스 차트에 타이틀을 올리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넘어야 할 상징적 과제로 남겨진다.

결국 해외 메이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저예산 타이틀로는 어렵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장 규모 를 뛰어넘는 대규모 자본(최소 1,000만 달러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 어려운 관문을 뚫기 위해 나선 작품이 바로 〈다이노 타임〉이었다.

이 작품은 〈큐빅스〉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이온이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제작비인 163억 원을 투입해 제작한 글로벌 지향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정부지원 기관, 펀드운용사, 관계사들이 모든 역량을 모아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그 결과 〈다이노 타임〉은 지난 2011년 클라리우스 엔터테인먼트와 3,000만 달러 규모의 북미 배급 계약을 체결해 낸다.

물론 범위를 실사영화까지 포함하게 되면 〈다이노 타임〉이전에 북미 메이저 배급을 실현시켰던 작품이 있기는 하다. 바로 심형래 감독의 〈D-WAR〉(2007)이다. 북미 2,275개 극장에서 개봉되어 와이드 릴리즈에는 성공(개봉 첫 주 흥행 5위) 했던 〈D-WAR〉는 최종적으로 1,098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기는 했으나 투입된 현지 P&A 비용이 1,500만 달러가 넘어 실제로는 큰 손실을 입은 케이스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프리스타일이라는 회사가 현지 배급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져서 국내 배급사의 북미 배급 대행(자체 P&A 비용 투자분 없음)을 수행한 정도의 비중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영화의 흥행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관객의 기호, 시기적 변수 등이 복합되어 만들어지는 수치이지만, 그와 함께 어떤 배급사가 어느 정도의 물량을 자체적으로 투입해 홍보 마케팅을 진행했느냐가 큰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D-WAR〉와 〈다이노 타임〉의 차이는 바로 이것이었는데, 〈다이노 타임〉은 현지 메이저 배급사가 P&A 비용을 자체 투자하여 능동적으로 배급을 진행하는 형태의 계약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외부 변수가 없다면 흥행적으로 기본 이상의 성과가 나올 것으로 많은 관계자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운한 ‘외부 변수’가 발생한다. 배급 계약을 체결했던 클라리우스 엔터테인먼트의 제프리 에이머 대표가 갑자기 돌연사하는 악재가 터져버리면서 북미 배급이 무산되어 버린 것이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모든 힘을 모아 야심 차게 도전했던 〈다이노 타임〉 프로젝트는 길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게 된다.

최초의 한미 합작 극장용 애니메이션 〈파이 스토리〉.
주류 시장이 아닌 마이너 시장을 공략해 기획된 작품이었다.

〈다이노 타임〉 보다 많은 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북미 배급 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던 〈넛잡 : 땅콩 도둑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브라더베어〉와 〈헷지〉 등의 각본을 쓴 론 캐머런에게 시나리오를 맡겨 맞춤형 기획을 시도했다. 그와 함께 제작 방식에서도 국내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파는 형태가 아닌 국제 합작 프로젝트로 진행해 글로벌 애니메이션의 외형을 갖추어 간다. 특히 전작인 〈볼츠와 블립〉때부터 캐나다와 공동 제작을 해오면서 제도적인 활용 방안에 대해서 많은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택스 크레딧 Tax Credit 제도이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사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금융조달 문제를 최소화하고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지난 1995년 한국과 캐나다 사이에 체결된 애니메이션 공동합작 조약에 의거해 캐다나 현지 법인 제작사와 합작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세금 감면(투자 비용의 약 45%) 혜택을 주고 있다.

이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의 제작사들도 캐나다와의 공동 제작을 늘리고 있는 추세인데, 레드로버의 캐나다 합작 파트너인 툰박스 엔터테인먼트는 캐나다 현지 법인 요건이 충족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전략적 제휴(크로스 증자)에 의해 당시 레드로버와 회사 주식을 공유 하고 있는 관계사였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를 활용하기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면서 캐나다는 〈넛잡〉의 제작을 추진하기에 최적의 입지를 확보하게 되며, 실제로도 제작의 상당 부분이 캐나다 툰박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된다 (그러한 이유로 개봉 직후, 이 작품을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c Redrover / ToonBox

다이노 타임의 사례를 거울삼아 글로벌 진출을 이룬 넛잡

전술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해외 극장 애니메이션 시장은 진입 자체도 어렵지만 현지에서
책임 있게(외부 변수 없이) 작품을 배급해줄 능력 있는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방면의 비즈니스 기회가 많지 않았던 대부분의 국내 제작사들은 칸 필름 마켓이나 AFM(American Film Market) 등에 작품을 출품해 배급업체를 섭외하는 것이 최선책이었고 프리세일 마켓의 특성상 러닝 개런티를 보호받기보다는 특정 가격에 단매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넛잡 : 땅콩 도둑들〉 (2014)을 제작하게 되는 레드로버 역시 초기에는 해외 네트워크를 찾지 못해 이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진출을 모색했다. 하지만 150억 원을 투입해 제작한 〈볼츠와 블립〉(2010)이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해외 견본시 참여만으로는 빅 마켓을 뚫기 위한 방법론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다이노 타임〉이 추진했던 것처럼 마켓 파워를 가지고 있는 현지의 능력 있는 배급사와 조인하는 것이 가장 확률 높은 성공 전략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한 레드로버는 2013년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미국 LA에서 〈넛잡 : 땅콩 도둑들〉의 배급사 선정을 위한 피칭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오픈로드와 북미 배급 계약을 체결해 낸다. 오픈로드는 2011년에 창립된 비교적 신생 배급사이지만 라이언스게이트와 와인스타 인컴퍼니 출신 인력들을 대거 영입해 기존 배급사들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회사이다.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D-WAR〉와 같은 배급 대행 형태가 아닌 오픈로드가 자체적으로 2,300만 달러의 P&A 비용을 투자해 능동적으로 〈넛잡 : 땅콩 도둑들〉의 북미 배급을 진행했다는 부분이다. 그 결과 〈D-WAR〉보다 1,000관 이상 더 많은 3,427개의 개봉관을 확보할 수 있었고 개봉 시기도 당시 〈겨울왕국〉의 미국 내 흥행력이 둔화되고 있었던 1월 중순으로 잡은 것이 주요해 개봉 첫 주 2,055만 달러의 흥행수입으로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흥행 가도는 개봉 4주차까지 박스오피스 10위권을 지키는 지속력을 보여주었으며 최종적으로 북미 흥행수입 6,423만 달러라는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실적을 만들어 낸다.

글로벌리즘과 국내 흥행과의 역학 관계

한편 작품을 완성해 놓고도 북미 배급이 무산되어 표류하던 〈다이노 타임〉은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어린이날 시즌에 맞추어 국내 개봉을 먼저 진행한다. 직접 제작비 투자까지 했던 CJ 엔터테인먼트의 메이저 배급라인을 통해 개봉되었고 연예인 마케팅을 비롯해 흥행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홍보수단들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국내에서 기록한 최종 흥행 스코어는 관객동원 283,300명에 불과했다. 제작비 163억 원을 투입하고 멜라니 그리피스, 윌리엄 볼드윈, 제인 린치 등과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까지 캐스팅해서 세계 시장 진출의 큰 꿈을 펼쳤던 이 글로벌 애니메이션은 정작 안방인 국내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외면을 당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이같은현상은글로벌흥행성공의꿈을이룬〈넛잡:땅콩도둑들〉에게도똑같이발생한다. 북미에서먼저흥행돌풍을일으켰던〈넛잡:땅콩도둑들〉은약2주의시차를두고2014년1월29일 국내 개봉되었는데, 개봉 직전 이미 박스오피스 흥행 이슈 때문에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고 여기에 현직 대통령이 극장을 찾아 일반 관객들과 함께 작품을 관람하는 등 〈넛잡:땅콩 도둑들〉의 국내 흥행 가능성은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개봉 첫 주에 기록한 〈넛잡 : 땅콩 도둑들〉의 국내 흥행 성적은 215,981명으로 7위에 머문다. 개봉 2주차에도 상황은 반등되지 못하고 7위를 지킨 〈넛잡 : 땅콩 도둑들〉은 개봉 3주차에는 아예 1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급락을 맞으며 최종적으로 478,392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상영이 종료된다.

〈넛잡 : 땅콩 도둑들〉의 국내 흥행 실패와 관련해서는 많은 분석들이 있으나, 가장 먼저 〈겨울왕국〉 여파를 거론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북미에서는 〈겨울왕국〉의 흥행력이 많이 떨어진 시점에서의 개봉이라 큰 피해가 없었으나 국내에서는 〈넛잡 : 땅콩 도둑들〉이 개봉된 1월 말 경부터 오히려 흥행에 가속도가 붙어 1,000만 고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객 유입에 어려움이 있었다.

두 번째로 북미에서의 실적이 배급사의 능력이 크게 작용한 것과 같이 국내 개봉 시에도 배급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는데, 〈넛잡 : 땅콩 도둑들〉의 경우 200억 원 이상이 투입되어 한국 영화 시장의 규모에서는 분명한 빅 타이틀 이었음에도 CJ나 롯데와 같은 메이저 배급 라인을 타지 못하고 싸이더스를 통해 배급되었다(당시 싸이더스의 소유주였던 KT가 〈넛잡 : 땅콩 도둑들〉의 투자자였기 때문).

하지만 〈넛잡 : 땅콩 도둑들〉의 국내 흥행 실패 원인을 개봉 시기와 배급사의 능력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기획되는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국내 정서와의 괴리감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 〈파이 스토리〉, 〈코알라 키드〉(2012), 〈슈퍼 프렌즈〉(2016) 등과 같이 역시 글로벌 소재 작품들을 제작해 오고 있는 디지아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을 살펴보면 의도적으로 이 작품들이 한국산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가능한 부각되지 않도록 홍보 마케팅을 진행할 정도이다. 그럴 경우 관객들 중 상당수는 이 작품이 어느 나라 애니메이션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관람하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만이 흥행 수치를 좌우할 뿐, 국내 정서와의 괴리에 대해서 불만이나 아쉬움을 토로하는 관객은 드물다.

그러나 〈넛잡 : 땅콩 도둑들〉은 다르다. 초기 단계의 홍보 마케팅부터 한국산 애니메이션의 자긍심을 알리는 다분히 ‘애국심 마케팅’을 전개하였고 더구나 작품의 대미를 지원군 싸이가 장식하면서 모든 관객들에게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전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하지만 감독도 각본가도 모두 외국인이고 제작 스태프들도 상당수가 외국 인력들에 의해서 외국의 정서대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에 애국심 마케팅은 적절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넛잡 : 땅콩 도둑들〉의 국내 흥행력을 감퇴시킨 역풍이 되었다고 보인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재앙으로 회자되고 있는〈원더풀 데이즈〉를 2편 만들 수 있는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하고도 13년 전 〈원더풀 데이즈〉 수준의 처참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다이노 타임〉.
북미 배급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불운은 분명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30만 명도 동원하지 못하는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로 과연 북미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의문은 2015년 6월 뒤늦게 이 작품의 북미 개봉이 성사(북미 개봉명 : BACK TO THE JURASSIC)되면서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박스오피스 최종 흥행수입이 4,351달러*로 집계되었다. 163억 원을 들여 만든 작품이 전략 시장인 북미에서 우리 돈으로 480만 원(2015년 6월 18일 환율 기준)을 벌고 상영을 종료한 것이다.

출처 : http://www.boxo cemojo.com/movies/?id=backtothejurassic.htm

디지아트가 글로벌 배급을 목표로 제작비 120억 원을 들여 제작했던 〈슈퍼 프렌즈〉. 전통적으로 디지아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은 국내 개봉 시 포스터에 국내 제작진 이름을 넣지 않고 마치 해외에서 제작된 작품인 것처럼 마케팅을 진행해 왔다. 흥행 성과를 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콘텐츠 브랜딩과 아이덴티티를 포기하는 전략일 수 있어서 이것 역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로컬 콘텐츠로 출발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점박이〉와 〈뽀로로〉만이 흥행적으로 성과를 올렸을 뿐, 글로벌 배급을 우선 목표로 기획된 작품들 중 국내에서 5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은 없다. 한 마디로 국내 관객들의 기호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극장 시장은 할리우드 6대 메이저가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시장으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이 시장을 포기(?)하고 글로벌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시장은 누가 지키나?

2010년을 전후해 주 5일제 시행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의 영화 시장은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마켓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가족용 ‘실사 영화’의 비율은 높지 않고 만일 이것을 한국 영화로 한정 지을 경우에는 관련 영화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때문에 크게 성장하고 있는 가족 영화 시장의 메인 콘텐츠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주종을 이룬 다고 볼 수 있다.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 개봉 타이틀 수는 2010년 기준으로 20여 편 수준이었으나, 2011년에 2배 규모인 51편으로 늘어났고 2013년에 다시 2배가 증가해 무려 102편이 개봉되는 사이즈로 확장되어 현재까지 연평균 80편 전후의 작품이 개봉되고 있다. 비단 이 기간 중 개봉 타이틀 수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2011년 〈쿵푸팬더 2〉가 관객동원 500만 명을 기록한 지 불과 2년여 만에 〈겨울왕국〉이 관객동원 1,000만 명의 고지에 도달했을 정도로 한국의 가족용 애니메이션 시장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는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점유율 9.7%(최근 5년간 전체 애니메이션 개봉 편수 기준 국산 개봉작 비율)라는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이것도 상영 시간 60분 이하의 독립 애니메이션들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라서 상업용 타이틀로만 조사할 경우 시장 점유율은 5% 미만의 심각한 지경에까지 떨어지게 된다.

드라마, 음악, 게임 등 성공한 한류 콘텐츠 산업이 대부분 내수 시장의 검증을 거쳐 세계 진출의 수순을 밟아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아직 안방에서조차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어떤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글로벌’을 연호하고 있는데, 그러는 사이 정작 우리 시장은 해외 글로벌 애니메이션들에 의해 역으로 완전히 점령당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서두에서 거론한 것처럼 해외 수출이 전제되지 않으면 손익을 맞추기 어려운 문제가 있고, 단순히 수익적인 문제만을 떠나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세계 시장 도전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외화를 벌기 위한 수출 상품이 아니다. 내수 시장이 먼저 융성해야만 글로벌 흥행 대박을 이룰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2011년에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성공작이 나오면서 한국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은 한 줄기 빛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열어준 가능성들에 의해서 현재 많은 작품들이 기획되고 있다. 저마다 제작방식도 다르고 목표로 하는 지향점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의 어린이들과 우리의 관객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그것이 전제가 된 글로벌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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