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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 정책이사,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 부단장, 카네기멜론대학교ETC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2006년부터 한중만화애니메이션산업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1.

 “문제는, 결국 돈이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든 이런 식의 결론에 이르게 되면, 본질은 흐려지거나 또는 명쾌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제 해결의 열쇠는 돈이 쥐고 있기도 하고, 또는 돈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돈은 매우 강력하고 직접적이며, 위험하면서도 편리하고 매력적인 시스템이다. ANIM의 시범호가 ‘애니메이션과 돈’이라는 선정적인 이슈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부담스러우면서도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시작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돈이라는 것의 존재론적, 생성론적 기원과 변화를 철학적으로 고찰하지 않더라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많은 모순적 구조와 해결 또한 돈 자체와 돈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통해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2.

돈은 자본주의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금권만능의 시대 – 무소불위의 신인가.
돈이 인류의 개인화를 촉진했다는 주장이 있다. 모든 것들의 가치를 환원해서 줄 세워 주는 돈이라는 기준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보다는 더 공동체적이고, 덜 독립적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돈은 현대인이 현대인일 수 있게 규정해주는, 자유의 상징이다.
동시에 돈은 힘이고 권력이다. 국가 예산이 결정되는 시기에 역시 돈과 관련된, 참담한 추락과 버티려는 안간힘을 목도하고 있다. 돈은 개인이나 집단에 자유와 다양한 가능성을 주고 사회를 지탱 하는 동력이 된다. 돈은 그 자체로 이미 가치를 지니고 있고,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가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치를 훼손하는 주체로도 자주 기능한다. 돈과 권력에 의해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이들의 카르텔에 의해 사회가 얼마나 병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돈이라고 하는 무정물은 가치 중립적이겠지만, 그것이 가진 힘과 매력으로 인해 쉽게 중립성은 훼손된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우리는 돈의 유혹으로 빠져들어간다.
처음엔 가족을 위해 돈을 벌다가, 어느 새 돈에 중독된 자신을 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돈을 좇아 가족을 버리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사람이 먹던 술이 결국 사람을 먹는 것처럼, 돈을 벌던 사람이 돈에 빠져 망가지는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술보다 더 강하고 광범위한 유혹이다. 어쩌면 돈과 가치는 타협 불가능한 평행관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돈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주제에 맞춰 돈을 통해서 애니메이션 현상들을 보고, 애니메이션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 보려 한다.

3.

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 초반까지 불었던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의 신설 붐은 돈으로 집약될 수 있는 산업적, 상업적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지 않고서야 만화 애니메이션이 오랜 세월 ‘청소년 탈선의 주범’이었다가 갑자기 ‘상아탑의 핫한 뉴 트렌드’ 로 완벽 변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서 대표적으로 말 안 듣던 말썽꾸러기 망나니가 자고 일어나니 자기도 모르게 효자가 되어 있는 꼴이었다.

1995년 처음 열렸던 SICAF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오프닝의 문화부 차관 축사에서도 정부가 세금으로 말도 안 되는 만화 행사를 한다고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이 1995년의 분위기였다. 그 이전부터 꽤 오랫동안, 어쩌면 그 후로도 한동안, 모 단체에서 어린이날이 되면, 만화-애니메이션의 책과 비디오 등을 모아놓고 화형식을 거행 했고 그 장면이 뉴스로 중계되기도 했다. 삶의 냄새 그득했던 만화방은 우범지대로 묘사되었고, 애니메이션은 90년대 말까지 국내 전 영상 분야 외화벌이의 90%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세제혜택과는 거리가 먼, 문화의 사각지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SICAF는 첫해 부터 기록적인 흥행을 했고, 이후 방송사-신문사-지자체 등이 앞 다투어 유사한 행사들을 쏟아냈다.

4.

1990년에 처음 공주전문대에 만화예술과가 생기고, 그 핵심교육의 세 트랙을 만화,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으로 정하면서 애니메이션 교육은 시작되었고, 95년을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이라는 이름을 붙인 학과들이 전문대뿐만 아니라 4년제 학부에도 생겨나고, 몇몇 대학원에도 유사한 명칭을 붙였다. 한때 연극영화과보다 많다고 할 정도로 많은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들의 신설 붐이 이어졌고 지금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많은 박사과정이 생겼다. 영상원의 모 교수가 ‘예전에 영화판에 몰리던 인재들이 요즘에는 주로 애니메이션 판으로 몰리는 것 같다’라고 했던 것도 이 무렵이다. 2000년 전후로, 애니메이션 관련학과가 150여개에 이른다는 발표도 있었고, 이 무렵에 필자도

모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 교수로부터 게임 애니메이션과로 학과 명칭을 변경하려 한다는 상담전화를 받기도 했다. 많은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만화도시, 애니메이션 도시가 되려고 노력했고, 관련 행사와 관련 센터를 유치했다.

5.

1995년 무렵에 문화부에는 문화산업국이 신설되었다. 경제 트렌드도 제조업에서 문화산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고, 쥬라기 공원의 신화적 성공을 들먹이고, 5대 제조업보다 5대 문화산업이 더 큰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밋빛 가능성이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이런 열풍에 문화산업에 대한 담론이 충분하지 않아서였을까. ‘문화산업이란 게 무엇인가’. ‘문화의 산업화인가 산업의 문화화인가.’ ‘Creative Industry 인가 Entertainment Industry 인가, 아니면 Cultural Industry 인가’ 하는 무르익지 못한, 결론 없는 논쟁들도 스쳐 지나갔다.
이번 정부가 주창한 ‘창조경제’라는 명제에 대한 논란과 혼란도 어쩌면 우리가 초기에 문화산업에 대한 돈과 가치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고 증폭되어 온 과정에서 벌어진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이 돈이 된다는 것, 그래서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다지 잘못된 발상이나 접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버는 상황에서, 돈에 중독되고, 결국 돈을 위해서 가족을 버리는 상황이 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창조경제가 풀어야 하는 과제처럼 애니메이션도 돈이라는 당위성 말고 또 다른 가치들에 대해서 충분한 문제 제기와 논의가 지금이라도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글의 첫 번째 문제 제기는, 돈이 된다는 사실 말고, 애니메이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애니메이션 테마파크로부터 재미있는 제안을 받았다. ‘학부모들이 모여서 자녀들에게 예술교육을 시키려고 하는데,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융합적 예술교육을 시켜 달라.’ 는 것이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이 글, 그림, 소리, 움직임의 모든 예술적 재료를 다 포함하고 있고 창작의 과정도, 결과물도, 감상의 방식도 예술 융합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청소년들의 특정 예술적 소양을 발견할 수도 있고, 키워줄 수도 있다. 이미 내부적으로 연구팀을 만들어 애니메이션을 통한 예술 융합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워크숍도 진행하던 중이었지만, 외부에서 학부형들로부터 그런 구체적인 제안을 받게 된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지 ‘교육적 가치’로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또 다른 애니메이션의 가치가 아닌가. 산업과의 연관 고리로든 다른 이유로든,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여전히 저급한, 예술의 2부 리그 어딘가에 위치시키고 싶어 하는 묻지 마 전문가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소식이다.

6.

한편으로는 벌써, 애니메이션의 시대는 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애니메이션 학과들이 좀 더 트렌디한 명칭으로 개명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고,
좀 더 힘 있어 보이는 문화산업의 이웃 영역에 병합되기도 하고, 시대-사회적 이슈에 부합하여 본적을 옮기거나 메뉴판을 전면 개편하기도 한다.
두 번째 문제 제기는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이제 한물갔나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문제 제기와 관련이 있다. 돈이 된다고 몰려들었다면,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애니메이션계 자체 내에 책임을 묻고, 반성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고, 그저 돈이 되느니 안 되느니, 효자 산업이니, 차세대 성장 동력이니, 킬러 콘텐츠니 하는 말에 묶여서 제대로 된 비판이나 성장을 멈춘 채 안주해 버린 꼴은 아닌가.

7.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학년도 입시에서 한예종 애니메이션과의 경쟁률은 30:1을 넘겼다. 반가운 마음 한 편으로 어떻게 이렇게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들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인지 궁금 할 정도다. 더구나 중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애니메이션이 한물갔다는 얘기는 좀 머쓱해지까지 한다. 중국 애니메이션은 1950년대 후반 전성기에 이미 〈피리 부는 목동〉, 〈엄마 찾는 올챙이〉 등을 만든 터웨이, 첸지아준 등을 필두로 중국적이면서 국제적인,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후 불어 닥친 문화대혁명의 회오리에서 좀처럼 다시 일어나지 못하던 중국 애니메이션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교육-산업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북경의 두 강호, 북경전영과 중국전매를 중심으로 이후 10여 년간 전국에 약 4~500개의 애니메이션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4대 교육기지의 하나인 장춘의 길림동화학원의 경우, 애니메이션과의 모집정원이 1,000명으로, 4년제 애니메이션 과에 4,000명이 수학하고 있다.

통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중국이지만, 2010년 전후로 애니메이션 유관 학과가 1,000 여 개, 전공 학생이 50만에 이른다는 발표도 있었고 이미 창작 애니메이션 생산량은 20만 분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을 뿐 아니라, 규모 면에서는 비중화권과 중화권으로 나눌 수도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8.

그리고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애니메이션 과를 신설, 또는 증설하겠다는 중국 학교 재단 관계자들의 제안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만들고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교육기관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인력이 넘쳐나는 중국이, 지금도 애니메이션에 관한 새로운 뉴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주 수요층인 어린이들만 3억 명에 이른다고 하고, 더구나 최근 풀린 산아제한 정책 등의 여파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교육의 동반 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만 부러운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적 토양 때문인지, 중국은 애니메이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총리를 중심으로 열 개 가까운 부처가 함께 모여서 논의한다고 한다.
‘동만유희(動漫遊戱)’1) 라는 중국식 표현도 재미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게임-뉴미디어 콘텐츠가 연계하는 구조인데, 교육도, 산업도, 정책도 융합적으로 굴러가는 측면이 있다. 어쩌면 융합의 트렌드 속에 정책이 시작된 후발주자가 누리는 메리트일 수도 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중국 애니메이션은 양적-질적으로 여전히 성장세다.

9.

2016년 10월에 발표한 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의 리포트에 따르면, 2009년~2015년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 총 부가가치 현황은 368억 위안에서 1,200억 위안으로 증가했다. 2016년에는 〈대어해당〉 등 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했고(831억 원) 주목할 만한 점은 〈화강호〉, 〈진혼가〉 등 중국 성인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과 〈돼지협객〉, 〈곰 출몰〉 등 어린이 대상 작품이 모두 성공하면서, ‘전연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고민하고 지향하는 문제들을 어느 새 문화산업 교육과 진흥의 후발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차근차근 해결해 가는 셈이다. 더구나 중국은 타 분야도 그렇지만 문화산업 분야 우리나라의 자산과 인력, 기업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고, 최근 들어 우리 문화산업 분야 기업들 역시 중국과의 교류 비중을 높이고 있다. 그만큼 부작용도 많고, 우려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세 번째 문제 제기는, 우리가 중국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10.

마지막 문제 제기는 이런 상황에, 다시 애니메이션 교육-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애니메이션 과를 설립한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교육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고, 그 교육목표에 맞춰서 입시-교과과정-졸업시험(작품)에 대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목표를 잡는 첫 길목에도 많은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

–  예술, 공학, 인문, 미디어… 어느 지점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출발할 것인가.

–  작가를 키울 것인가, 현장 맞춤형 인력을 키울 것인가.

–  극장, TV 등 올드미디어 애니메이션 지향인가. 인터넷-모바일 등 뉴미디어 애니메이션지향인가. 아니면 더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

–  디지털 프로세스와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그리기(2D)중심인가. 만들기(3D)중심인가.섞는다면어떻게섞을것인가.

– 제작 중심인가. 이론 중심인가.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달라서, 제작공정도 (너무) 다양하고 현장에서의 활동도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하다 보니 논의가 더 복잡해지는 것이겠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문제만 짚어 보기로 하자.
작가냐 현장 맞춤형이냐 – 현장에서는 학교를 마치고 나온 인력이 현장과의 괴리가 있다고 말하고,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는 작가 육성이냐 현장형 인력 육성이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작가 육성이라는 표현에는 ‘현장 주도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니 바꿔 말하면, 현장 주도형이냐 현장 맞춤형이냐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처럼 현장의 트렌드가 자주 바뀌고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 콘텐츠 플랫폼이 변화되는 경우에 학교는 ‘현장 주도형’ 또는 ‘작가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4년제 대학의 기본 목표는 일반적으로 ‘교양인을 양성’ 하는 것이고, 사회를 살아가는 교양인이 되기 위한 기본 소양 교육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학생이 입학한 후 교육과정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는 시점은 최소 5년에서 길면 10년까지도 걸릴 수 있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요즘같이 빠른 변화의 시대에, 졸업하고 나면 강산이 두 번은 바뀌지 않을까. 사실 어느 쪽을 버리고 다른 어느 쪽을 취하는 식의 선택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보완하느냐에 좀 더 가깝다고 본다.

교육목표를 세우고 난 다음 과정은 교과과정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입시-교과과정-졸업 프로세스를 결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누구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 하는 문제고, 무엇으로 어떻게 졸업을 시킬 것인가도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 흐름이 진학, 취업 또는 창업의 진로 문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11.

제기된 문제들에 모두 답을 할 수는 없더라도 논의를 시작할만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산만하게 늘어놓은 문제 제기들을 좀 추슬러 보면,

– 하나, (돈이 된다는 사실 말고) 애니메이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 둘, 애니메이션은 이제 한물갔나. (이제는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가)

– 셋, 중국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넷, 이런 상황에, 지금 다시 애니메이션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2.

대다수의 아이들이 일정 기간 애니메이션에 매혹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유치하고 저급하다고 쉽게 말하기도 하지만, 중국은 같은 이유로 영화 같은 타 분야와 애니메이션을 다르게 비중 있게 취급한다. ‘아이들이 보는 거니까 중요하다’ ..격하게 공감되는 논리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애니메이션은 주로 상상의 영역에 둥지를 튼다. 요즘처럼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시간이 짧아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현실이 상상을 앞지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상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흐트러뜨리고, 앞쪽이 아닌 다른 곳도 보게 만들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스콧 맥클루드가 『만화의 이해』에서 부제를 ‘보이지 않는 예술’이라고 붙였던 것은, 애니메이션에서도 유효한 탁월한 워딩이라고 본다.
애니메이션의 가치에 대해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교육적으로, 문화적으로, (종합) 예술적으로, 또 그 외의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애니메이션이 한물갔다는 표현은 아마 상업적 관점 중에서도 극장과 TV라는 올드미디어에 편향된 시각이라고 본다. 애니메이션은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가로지르는 내용적 스펙트럼과 실사와 비실사를 연계하는 형식적 자유로움, 글-그림-소리-움직임을 섞는 재료적 다양함, 그리기와 만들기를 아우르는 기법적 풍부함, 전시-출판-공연-상영의 기존 예술 감상의 양식을 넘어 복합 체험과 닿아있는 특수한 영역이다.

13.

중국(타이완)에 처음 갔던 것이 1990년이었으니 30년이 가까이 되어 가고, 50번 넘게 방문하고 지금은 중국에 살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아직도 나날이 새롭다. 중국은 용과 봉이 공존하는 나라라고 한다. 정말 용처럼 포용력이 있으면서도 봉처럼 배타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거대한스펙트럼의나라다.한국에비하면,싼것은훨씬더싸고,비싼것은훨씬더비싸다. 물건도 좋은 것은 훨씬 더 좋고, 나쁜 것은 훨씬 더 나쁘다. 이 거대한 스펙트럼 속에서 지혜로운 조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간극의 공활함 속에서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거대한 스펙트럼에 속도가 추가되면서, 중국은 지금 극단적인 부조화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사람들은 멀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작고, 반도에서 살아온 한국이 잘할 수 있는 것은 균형이라고 본다. 어쨌든 지금 중국에서 한국은 작지만 문화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스펙트럼에 기초한 디테일을 추구할 수 있느냐가 한중교류의 관건이라고 본다.

중국 애니메이션은 최근 몇 개 극장용 작품을 제외하면 아직 국제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없다 보니 더러 한국을 미국-일본과 함께 3대 강국으로 규정2) 하고, 많은 교류 제의를 하고 있는 편이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로, 과장을 덧붙이자면 중국의 애니메이션 교육기관치고, 어떤 형식으로든 한국과의 교류를 원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기회라고 볼 수도 있고 위기이기도 하다. 교육의 규모 면에서는 이미 상대가 되지 않지만, 기간이나 다양성이 다소 부족한 측면도 있다.

14.

문화의 시대가 왔다고 하고, 정치나 전쟁이나 종교나 경제가 아닌 문화 분야에서 영웅이 나오는 시대 라고들 한다. 최근 거대 자본주의의 수혜자들인 미국의 부호들을 중심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기부와 재단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고도 한다. 이 역시 돈의 논리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보지만, 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회는 제공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의 교수집단이나 연구자들이 우리 분야 스스로가 가진 가치를 발굴, 확장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애니메이션이 가진 산업적 가치 위에, 본질에 근거한 더 많은 충분한 가치를 발굴하고 사회적으로 반영시키는 노력이 없이 기존 애니메이션 교육을 강행하는 것은 결국 자생력을 잃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과는 더 이상 파트너가 아닌, 경쟁자 또는 지배자인 봉의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교육의 변화 역시 위에 말한 시대적, 공간적 조건들 위에서 재논의될 필요가 있다. 돈의 논리에 의해 시작된 관점을 인정하되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들로 확장하고, 보완해야 한다. 돈을 앞세우고 그 위에 가치 논리를 끼워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1) 動漫遊戱 : 動은 애니메이션, 漫은 만화, 遊戱는 게임을 의미한다.

2) 2007년 항주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세미나에서 중국 세기상사 대표가 발표했던 세계 애니메이션 3대 강국은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었고,미국은 大, 일본은 小, 한국은 新의 전략으로 애니메이션의 강국이 되었다고 분석하였다.